울산에서 조선소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상문과 나는 20대 중반 서핑에 빠졌다. 상문은 졸업과 제대 후 저축을 털어 인도네시아와 호주로 떠난다. 농장과 식당 등 가리지 않고 여러 일을 하며 파도를 타고 서프보 드를 만드는 것에 몰두했다. 나이가 차고 해외에서의 생활을 지속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귀국하여 강원도 양양에 정착하게 되었다. 서핑과 서프보드에 매진한 시간만큼 상문은 한국 서핑씬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갖게 되었고 많은 진지한 서퍼들로부터 신뢰 받는 서퍼/셰이퍼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경제적인 형편을 나아지게 하지는 못했다. 휴가철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양양의 생활은 녹록치 않다. 월세는 곧잘 밀리고 통장잔고는 늘 아슬아슬, 고추창고를 빌려 개조 한 공장은 비가 샌다. 보드를 만드는 일이 좋지만 더 많은 시간을 생계를 위한 수리와 강습에 할애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돈을 많이 벌거나 사업을 확장하는 것에 관심이 없는 상문의 형편은 나아질 기미를 찾기 어렵다. 그나마 늦은 오후 작업을 마치면 파도를 타고 새로운 보드를 구상하는 삶이 나쁘지 않다.
바쁜 여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 조금은 낭만적인 시간이 온다. 화려하게 불을 밝히던 서프샵들은 문을 닫고 고요해진 바다엔 여름보다 크고 힘센 파도가 밀려오기 시작한다. 수입은 적어 지지만 그만큼 자신을 위한 시간이 더 주어진다. 겨울 양양에 함께 남은 친구들과 차갑고 고요한 자연을 즐길 수 있다.
상문은 가까이서 구할 수 있고 저렴한 건축용목재로 서프보드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한다. 나무로 보드를 만들겠다는 계획은 고난을 불러오고 수리일도 밀리는 와중에 작업은 한없이 늘어진다. 반갑지 않은 명절, 고향인 울산에 내려간 상문은 가족들을 만난다. 아버지 이윤우는 아직도 조선소에서 일 한다. 근면한 삶에 대해 강조하는 부모는 정규적인 직장도 없고 결혼도 감감무소식인 상문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부모가 상문에게 말하는 책임감은 가정을 꾸리고 부양하는 것이지만 상문은 파도를 더 잘 타고 잘 느 낄 수 있는 보드를 만드는 일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나무 서프보드라는 세상의 효율과는 동떨어진 무용한 것에 몰두하고 있는 상문의 삶은 무엇을 향해가고 있는 것일까?